유럽 축구계를 강타했던 유러피언 슈퍼리그(ESL) 창설 논의는 48시간 만에 팬들의 분노와 선수들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 되었습니다. 당시 여론은 '돈이 축구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명분 아래 슈퍼리그를 축구 전통을 파괴하는 악으로 규정했습니다.


현재

슈퍼리그 의미
출처 : a22sports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슈퍼리그가 나았을까?"라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슈퍼리그가 거부된 후 FIFA와 UEFA가 주도한 클럽대항전 및 국가대항전의 무자비한 경기 수 확장 정책이 선수들의 체력을 극한으로 몰아넣고 경기력 저하를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흐름

슈퍼리그의 좌절

7조 원' 대신 재정 긴축을 선택한 유럽 축구

슈퍼리그는 JP모건으로부터 약 7조 원에 달하는 초기 지원금을 약속받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았던 빅클럽들에게 이 자금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슈퍼리그 찬성론자들은 *빅클럽의 수익 증대가 이적 시장을 통해 중소 클럽의 자금난 해소 및 유스 육성으로 이어진다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하지만 슈퍼리그가 무산되자 빅클럽들은 즉각적인 자금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등 빅클럽들은 한동안 천문학적인 이적료 지출을 자제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저렴한 FA 선수 영입이나 자체 유스 선수 콜업을 통해 스쿼드를 운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빅클럽의 지갑이 닫히자 중소 클럽들이 유망주를 판매하여 얻던 이적료 수입이 줄어들며 리그 전체의 재정 순환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명분을 지켰지만 경제적인 활력은 잃어버린 셈입니다.

FIFA/UEFA의 결정타 :  국제 대회 참가 불허 협박

슈퍼리그 논의를 중단시킨 결정적인 요인은 FIFA의 경고였습니다. FIFA는 슈퍼리그 참가 클럽의 선수들에게 월드컵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비롯한 모든 국제 대회 및 클럽 대항전 참여를 불허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선수들에게 월드컵 출전 박탈은 커리어의 종말을 의미했고 결국 선수들과 팬들의 여론이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슈퍼리그가 돈의 문제였다면 FIFA의 발표는 선수 커리어의 문제를 건드린 것입니다.


역설

경기 수 폭증과 선수 혹사

슈퍼리그의 폐쇄성을 비판했던 FIFA와 UEFA는 아이러니하게도 슈퍼리그가 좌절된 후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위해 전례 없는 규모로 대회를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책들은 고스란히 유럽 빅리그 선수들의 체력 부담으로 전가되었습니다.

UEFA의 클럽 대항전 확장 및 네이션스리그 도입

UEFA는 유럽 클럽 대항전의 본선 팀 수를 대폭 늘렸습니다. 챔피언스리그 본선 36팀 확대하며 기존 32팀에서 36팀으로 늘어났습니다. 기존 조별예선에서 리그페이즈로 변경했습니다. 이는 빅클럽들이 조별리그에서 최소 2~4경기를 추가로 치러야 함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유럽 클럽 대항전 컨퍼런스리그가 신설되면서 리그 전체의 경기 수가 증가했고 중소 클럽들도 시즌 중 잦은 해외 이동에 노출되었습니다.

기존 친선전 기간에 하던 경기를 네이션스리그로 대체했습니다. 네이션리그는 유로 예선 시드에 반영되어 유럽 선수들은 국가대표팀 경기에서도 친선전처럼 쉴 수 없고 매 경기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FIFA의 대회 확장

FIFA 역시 상업화를 가속했습니다. 클럽 월드컵을 32팀 확대하며 체력 부담이 더 늘어났습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에게는 시즌이 끝난 후에도 32강 규모의 클럽 월드컵이라는 새로운 의무가 추가되었습니다. 월드컵도 48팀 확대되어 본선 진출국이 늘어나면서 대회 규모와 기간이 길어져 선수들의 유일한 휴식기인 여름 오프시즌이 대폭 단축되었습니다.

이러한 확장 정책이 낳은 결과는 참혹합니다. 현재 유럽 빅클럽의 주전 선수들은 리그, 컵 대회, 챔피언스리그, 네이션스리그, 클럽 월드컵까지 모두 소화할 경우 한 시즌에 80~90경기에 육박하는 일정을 치러야 합니다. 반면 슈퍼리그는 경우 리그 38경기와 자국 컵대회를 합쳐도 45~50경기 내외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기타

슈퍼리그가 지향한 구조는 적은 경기로 최고 수준의 빅매치를 보장하여 선수들의 체력을 관리하고 몸값을 유지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이었던 반면, 현재 FIFA/UEFA의 시스템은 최대한 많은 경기를 통해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며 선수들을 혹사시키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최근 확장된 대회들은 흥행과 경기력 면에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유럽 선수권대회(유로)가 16팀에서 24팀으로 늘어난 후 조별리그의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지고 중소 팀들의 수비 위주 경기가 늘어나 재미가 반감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최근 32팀으로 확장되어 열린 클럽 월드컵은 기대만큼의 흥행 효과를 내지 못했으며 선수들의 체력 저하로 인한 경기력 미달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따라서 슈퍼리그 합리론의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만약 슈퍼리그가 진짜로 창설되었다면 선수들은 적은 경기 수 덕분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매주 빅클럽과의 경기에 임했을 것입니다. 이는 경기력의 질을 높이고 팬들에게 부상 없는 주전 선수들의 격렬한 명승부를 보장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당시 명분은 옳았지만 결과적으로 축구계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경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대가로 선수들의 건강과 경기의 질을 희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