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증시를 보면 상당히 묘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변동성이 매우 크다. 주가가 오르는 날과 내리는 날의 폭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여기에 환율이 1,500원대까지 상승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시장 충격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 가장 불안한 신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이 사이드카 발동이다. 사이드카는 시장이 급격히 움직일 때 프로그램 매매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제도다. 만약 연간 20회 이상 발동되는 수준이라면 이는 정상적인 시장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이러한 수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시장 충격과 비교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물론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근거로 경제 위기를 우려한다. 극단적인 비관론자들은 심지어 베네수엘라식 경제 붕괴 가능성까지 언급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와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베네수엘라는 국가 경제 대부분을 석유에 의존했고 산업 구조가 지나치게 단순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화학, IT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을 보유한 수출 중심 국가다. 또한 외환시장과 금융시스템 역시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따라서 초인플레이션과 통화 붕괴 같은 베네수엘라식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높지 않다.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일본형 장기 침체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세계 경제를 지배할 것처럼 보였다. 부동산 가격은 끝없이 올랐고 주식시장도 역사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미국 주요 기업들을 인수했고 일본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버블 붕괴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경제 규모 자체는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성장률은 급격히 낮아졌다. 물가는 오르지 않았고 임금도 정체됐다. 기업들은 살아남았지만 가계는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일본은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이 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도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글로벌 대기업도 많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체감 경제는 과거와 비교해 크게 나빠졌다. 안정적인 중산층이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삶의 질이 하락했다.
대한민국이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 역시 저출산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며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도 안고 있다. 경제 성장률은 과거처럼 5~10% 수준을 기대하기 어렵고 1~2%대 저성장이 새로운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OECD 역시 한국 경제가 성장세 둔화 국면에 진입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은 IMF도 극복했는데 또 위기가 와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IMF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았다. 노동력은 풍부했고 인구 구조도 젊었다. 반도체와 IT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직전이었다. 위기 이후에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동력이 존재했다.
반면 현재는 인구 감소가 시작됐고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과거처럼 성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따라서 향후 경기 침체가 발생할 경우 회복 속도는 IMF 시절보다 훨씬 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빈부격차 문제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빈부격차가 매우 심하다고 느끼지만 국제 비교에서는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 OECD 기준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에서 한국은 세계 최악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영국, 일부 남미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으로 평가된다.
반면 일본 역시 국제 기준으로는 비교적 평등한 국가에 속한다. 하지만 체감 격차는 다르다. 경제가 장기간 정체되면서 새로운 기회가 줄어들었고 자산을 가진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 간 차이가 커졌다. 그래서 통계상 불평등보다 체감 불평등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당장 극단적인 경제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부동산과 자산 격차가 확대되면 사회 전체의 활력은 점차 떨어질 수 있다. 대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계속 경쟁력을 유지하더라도 일반 국민들의 체감 경기는 나빠질 수 있다.
결국 앞으로 한국 경제의 핵심 위험은 "한 번에 무너지는 위기"가 아니라 "천천히 성장하지 못하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베네수엘라처럼 하루아침에 경제가 붕괴하는 시나리오보다 일본처럼 10년, 20년 동안 저성장이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훨씬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세계적인 제조업 경쟁력과 기술력, 높은 교육 수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구 구조 변화와 성장 둔화라는 구조적 문제도 동시에 안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위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저성장 시대에도 국민들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는 "망하느냐, 살아남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답은 향후 10년 안에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기타
지니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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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0.24
- 벨기에 0.25
- 노르웨이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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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 0.28
- 아일랜드 0.28
- 스웨덴 0.29
- 네덜란드 0.29
- 프랑스 0.30
- 독일 0.31
- 캐나다 0.31
- 호주 0.32
- 대한민국 0.32
- 일본 0.34
- 영국 0.37
- 미국 0.39
- 튀르키예 0.43
- 칠레 0.45
- 멕시코 0.45
- 온두라스 0.46
- 브라질 0.51